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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탈출기/무주택자 탈출기

흙수저 탈출기 [ 멘탈 : 의지 ] "집있고, 차있고, 결혼만 하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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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하던 말이 기억난다.

 

"집 있고, 차있고, 결혼만 하면 되겠네"

요즘 주변에서 늘 하는 말이다.

 

 

 

 

 

 

 

집 없고, 차 없으면 결혼 못하는 건가?

사실 그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집이라는 부분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집...

 

37년을 살면서

집 없이는 못 살았다.

 

 

 

 

잘 못 사는 게 아니라, 집이 없이는 못 살았다.

 

어릴 땐 부모님과

때론 할머니 할아버지와

때론 친구와

때론 형 동생들과

때론 사촌

때론 혼자

 

 

여러 가지 주거 형태로

 

 

누구에게는 판잣집

누구에게는 주택

아파트, 빌라, 원룸, 오피스텔, 펜트하우스

호텔, 여관, 모텔, 별장, 비닐하우스, 노숙 등 많은 방법으로

 

 

 

월세, 전세, 매매

를 통해 주거의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면 여기서 또다시

좋은 입지와 불편한 입지로 나뉠 수 있게 되겠다.

 

 

산에 산다고 가정하면,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하지 않을 것이다.

객지에 작은 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병원이 멀어서 반나절 이상 이동해야 하고,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불편하게 움직여야 하며,

식품을 구매하기에 불편한 그런 곳.

 

 

사람들은 이런 것을 꺼려한다.

왜냐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받은 금수저의 경우를 제외하고

일생의 많은 시간을 노동을 통한 근로소득을 원천으로 살아갈 텐데,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곳도 원치 않을 것이다.

 

 

 

직장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더욱 많이 늘어나고,

 

 

그럼 인프라가 잘 구축된 곳에 살기를 원할 텐데

결국 수도권으로 몰리게 되어 있다.

 

 

나 또한 근로소득을 위해 직장을 찾으며 서울로 왔지 않은가.

여기서 살기로 했으면 여기서 입지가 좋은 곳이든,

능력이 되는 곳에 집을 사서 지내면 된다.

 

 

"미래를 위해서 집을 사야 하지 않겠는가?"

 

 

그 시기는 경제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도 하겠지만,

지금이 나중에 보다 훨씬 빠르다고 생각한다.

 

 

지금 너무 비싸요

더 내려오면 사야지

 

 

안 내려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더 비싸지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서울을 기준으로

입지가 좋은 원룸 월세를 살려면

월세가 최소 70만 원이 넘는다.

(이보다 싼 곳이 있으면 가르쳐주라. 내가 가서 살게)

 

 

한 달을 30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2만 3천333원

관리비와 이것저것 사용하면 (형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10만 원(최소)

2만 6천666원.

 

 

최저시급 9160원 x 9시간 = 8만 2천440원 - 26666원(월세비용)

 

최저시급 9160원으로 9시간 일을 하고, 월세를 내고 하루에 남는 금액

5만 7천774원

 

 

 

5만 7천774원 x 30 = 1,673,220원

최저시급으로 하루에 9시간씩 일을 하고, 월세 70만 원을 내면 남는 금액.

여기서 먹고, 사고, 소비하고, 지출한다.

 

 

현실적인 숫자.

현실을 받아들여라.

피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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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미라는 지방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월세에서 시작하셨던 우리 부모님은, 내가 유치원을 다니던 그때 즈음

일층짜리 주택을 매매하셔서, 이층을 할아버지와 인부들과 함께 직접 지으셨다.

 

 

 

단칸방에서 연탄을 갈며 살던

네 식구의 거주는 새로 만든 이층 집에서 시작하였다.

일층에 살던 기존 주인이 계약이 끝나면서 우리는 일층으로 내려와서 살았고,

이층을 전세를 줬다.

 

 

 

일층에 방이 6개가 있었고,

가운데 나무문을 잠그고,

 

집을 반으로 나누어 다시 공간을 분리시켜 월세를 줬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일명 모기 차라고 방역차가 오면

뿌옇게 뿌려지는,

그 연기 속으로 미친 듯이 뛰어놀던 그때.

 

 

 

 

 

부모님은 꽃과 나무 식물을 구미에 있는 소매업체로 보내는 도매업을 하셨었는데,

기존 계약자였던 사람이 돌아가시면서 토지문제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그렇게 사업이 끝이 났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일이었나

사실 나는 이때 기억이 잘 나지가 않는다.

 

 

어머니께서는 법원을 계속 찾아다니셨고,

나는 고사리 손으로 어머니 손을 잡고 법원을 따라다닌 작은 기억만 남아 있다.

 

 

 

신평동이라는 동네였는데,

부모님의 한숨이 녹아 있는 동네이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엔,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와 있다.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집을 팔고 바로 대각선에 있는 주택 2층에 반전세로 살게 되었다.

이때가 내가 중학교 때의 일 있은 것 같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도시가스로 보일러를 가동하는 집이 거의 없었다.

등유로 보일러를 켜야 했는데,

주유소에 전화를 하면 작은 트럭이 와서 등유를 채워줬다.

어릴 때 기억으로 10만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기름이 채워지는 통으로 가서,

얼마나 남았는지 보고

보일러를 켜고 끄고 했었다.

 

 

 

 

따뜻하게 살던 어릴 때와 달리

이때부터 나의 겨울은 굉장히 추웠다.

 

 

아침에 씻으러 가는 욕실은 바깥 기온과 다를 게 없었다.

그마저 온수를 마음껏 쓰지도 못했고,

가스레인지로 물을 뜨겁게 데워서, 욕실로 가져와 차가운 물과 섞어서 머리를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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